남원호씨(가명)에게 미국은 자녀들의 미래를 열어줄 나라였다. 그러나 그가 들려준 인생의 끝자락에는 유학의 꿈보다 아내를 잃은 슬픔, 카지노에서 사라진 재산이 더 짙게 남아 있었다.
강원랜드 인근 도박중독상담센터에서 만난 남씨는 2026년 일흔일곱이었다. 한때 재산이 50억원에 이르렀다는 그는 20년 전부터 사실상 빈손이라고 했다. 자녀들과도 멀어졌다는 노인의 이야기는 김포공항 세관에서 시작됐다.
“김포공항 세관에 근무하던 시절은 나에게 최고의 전성기였지.”
그는 1963년 세관 공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할 때 월급이 2300원이었다고 기억했다. 금 한 돈이 2400원, 김포에서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표가 1800원이던 시절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오래전 가격에 대한 그의 기억은, 자신이 얼마나 먼 시간을 지나왔는지 보여주는 눈금 같았다.
남씨가 회고한 당시 공항에는 규정과 별개로 움직이는 통로도 있었다. 명품과 밀수품이 교묘하게 들어왔고, 상관의 지시로 밀수품 운반자를 특별히 통관시킨 일도 있었다고 했다. 어디까지가 확인 가능한 사실인지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지만, 그는 그 시절을 자기 인생의 전성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미국대사관 소속 영사와 가까워진 것도 공항에서였다고 했다. 부산행 항공편이 기상 문제로 취소되면 다음 비행기의 좌석을 부탁받곤 했다. 남씨는 이미 탑승한 젊은 승객을 예비군 훈련 문제를 내세워 내리게 하고 그 자리에 영사를 태운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누군가에게 베푼 편의는 다른 승객의 불편을 대가로 한 것이었다.
그런 일이 1년 이상 거듭된 뒤 영사가 그를 대사관으로 불렀다고 한다.
“당신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더군. 그래서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지. 내가 아니라 내 자녀들이라고.”
그는 그 인연이 가족의 미국행으로 이어졌고, 자신과 가족이 미국인 영사의 도움으로 거액을 줘도 힘들었다는 1975년 당시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시 비자와 시민권을 어떤 절차로 취득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남씨에게 분명했던 것은 자녀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열어주고 싶었다는 마음이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에 아내와 두 아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가족의 새로운 생활은 일곱 달 만에 비극을 맞았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