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박씨 부부가 카지노를 자주 즐겼다고 말했다.
“남편이 잃으면 부인이 그보다 더 많이 따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날도 있었을 것이다. 잃은 돈을 되찾았다는 경험은 다음 손실 앞에서도 기대를 남길 수 있다. 다만 그 기억이 부부에게 지속적으로 돈을 따는 능력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A씨가 전한 생활은 풍족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카지노에 다녔다.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아 박씨의 아랫배가 불룩해졌다고 했다. 보석과 명품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생일에 수백만원짜리 가방이나 보석을 선물하는 일이 특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족을 굶기지 않겠다던 다짐은 이미 이뤄졌다.
그다음부터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었을까.
좋은 집을 유지하고, 비싼 소비를 이어가고, 카지노에서 잃은 돈을 메우는 생활에는 계속 돈이 필요했다.
온라인 카지노는 그에게 돈을 벌어주는 사업이었다. 실제 카지노는 그 돈을 잃는 장소였다. 박씨는 두 곳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그해 10월, 돈으로 누리던 생활에 다른 문제가 닥쳤다.
한국과 필리핀 경찰의 공조수사로 붙잡혔다고 A씨는 전했다. 한국으로 송환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바카라에서 얼마를 잃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몸이 붙잡혔다. 좋은 집도 자동차도 그 순간의 신병을 바꿔주지는 못했다.
박씨는 평소 친분을 쌓아둔 현지 경찰 간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씨의 회고에는 100만페소라는 액수가 등장한다. 자신을 풀려나게 해주면 지급하겠다는 제안이었다는 것이다.
현지 경찰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한국 경찰에 신병을 넘기는 일을 늦췄다. 박씨를 조사실로 데려간 뒤에는 뒷문으로 내보냈다. 필리핀 경찰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화끈하게' 봐주기 수법이다.
한국 경찰이 신병 인계를 기다리는 동안, 박씨는 경찰서를 빠져나왔다는 이야기다.
A씨는 박씨가 집으로 돌아가 경찰 간부에게 약속한 돈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이어 태국으로 도피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위조여권도 요청했다는 설명이다.
붙잡힌 뒤 풀려났지만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음 도피처를 찾아야 했다.
A씨에 따르면 박씨 등 한국인 다섯명을 인계받으려던 한국 경찰은 현지 경찰로부터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며, 이들은 불구속 수사를 위해 석방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송환을 위해 필리핀까지 갔던 한국 경찰은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박씨가 향한 곳은 태국이었다고 A씨는 전했다.
그 뒤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어떤 이름으로 어디에서 살았는지, 재산을 얼마나 남겼는지, 가족과 함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생사 여부도 취재 과정에서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A씨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돈을 벌어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라, 또 다른 나라로 떠나는 도피자였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 마닐라 외곽에서 막막해했다. 그다음에는 거액을 벌어 좋은 집에 살았다. 아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아내와 해외여행을 했다.
그러나 돈이 그의 출국 사정을 없애주지는 못했다. 가족을 위해 벌었다는 말이 온라인 도박 사업의 성격을 바꾸지도 못했다.
쌀을 주워 담던 날, 박씨는 가족과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바람을 이루는 데 반드시 100억원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재산이 쌓인 뒤 그의 생활은 더 비싼 소비와 더 큰 판돈으로 옮겨갔다.
35억원을 들고 떠난 일주일 여행은 몇 시간 만에 끝났다. 경찰서에서 풀려났다는 날에는 다음 도피처를 찾아야 했다.
길바닥에 흩어진 쌀은 손으로 다시 모을 수 있었다.
카지노에서 잃은 돈은 빚으로 대신했다.